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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시대의 유럽
로마네스크는 10~12세기 서• 북유럽을 기반으로 성립된 조형양식이다. 5세기부터 시작된 민족대이동의 여파가 안정을 찾은 것은 프랑크족이 9세기초 샤를마뉴대제의 치하에서 비교적 안정된 사회를 만 들었을 때였다. 프랑크왕국도 9세기말에는 동 · 서의 두 왕국으로 분 열한다. 그리고 동 프랑크왕국(지금의 독일에 해당)은 오토왕 치하에서 이탈리아북부를 수중에 넣고 교회와 제휴하여 신성로마제국이란 이름으로 강력한 봉건제도를 통해 지방의 영주를 결합하고 문화면에서도 유럽세계의 지도자가 되었다. 서 프랑크 왕국(지금의 프랑스에 해당)도 또한 왕권하에서 국내 통일을 추진하였으나 이곳 지방 영주의 세력이 강하여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특성상 각 지방의 고유한 전통이 문화적으로 표출되었다. 게르만족 중에서 가장 늦게 이동을 시작했던 노르만족은 이 무렵 북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하여 11세기에 는 윌리암 왕이 영국을 침공하였고(1066) 이 지역을 통치함으로써 자 신들의 항해민족적 성격을 발휘하여 남 이탈리아 및 시칠리아에 이르 기까지 국토를 넓혔다. 특히, 이베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점거하여 그곳 에 이슬람교국을 세웠던 사라센인은 이 무렵 이탈리아반도의 남부에 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로마네스크 시대의 이탈리아는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중부에는 교황령. 남부는 노르만왕국으로 정치 상 복잡한 양상을 띄었다. 이처럼 유동적인 정치세력 안에 있던 유럽 사회도 정신적으로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완전히 통일되었으며 통일의 핵심이 된 것이 카톨리교회였다.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게르만인 황제 나 국왕과 때로 투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12세기의 교권융 성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활발했던 수도원 운동도 교회의 세력확립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실제 중요한 로마네스크 교회당 중에 는 수도원에 속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하여 이 시기는 10세기에서 12 세기에 걸쳐 종래의 고전세계나 비쟌틴 세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럽세계를 꿈꾸기엔 실제 성급한 시기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립
동방의 중세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은 결국 이슬람 고건축에 자리 양도했으며 비잔틴 건축이 그리이스 정교회의 세력권내로 흡수립으로서 자체적으로 현저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서유럽의 건축은 로마의 기법과 동방의 기법을 받아 들이면 서로하여 대체하는 고전의 이성적 요소를 누르고 유자에 내재하는 감성적 요소문 떨쳐 버린체 내성적인 심정을 표출하고자하는 게르만 고유의 의지를 구현하려 함으로서 특징적이고 독자적인 조형 세제를 강준 다. 그리하여 새로운 유럽 세계에 새로운 양식인 로마네스크가 탄생한다. 로마네스크는 지역의 환경적 차이에 따라 각 지방에서 각자 서로 다른 양상을 취하면서 발전한다. 우선, 프랑크왕국의 정통임을 자처하는 동 프랑크왕국은 10세기후 반에 번성기를 맞게되지만 그 무렵부터 주로 라인강 유역의 지방에 많 은 수의 거대한 교회당을 짓기 시작한다. 그들은 카롤링왕조의 교회형 식을 계승함으로서 게르만적 요소를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이 라인강 유역의 로마네스크야말로 가장 게르만적인 소위 순수한 로마네스크라 할 수 있다. 실제 라인강 유역은 게르만의 발상지에 가장 가까우며 초 기 게르만 문화의 중심지방이었다. 한편 대부분이 서 프랑크왕국의 영역이었던 프랑스는 많은 로마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당시 비록 퇴색했지만 라틴문화의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로마르강 이남의 남프랑스의 로마네스크는 라틴적이자 게르만적인 양상을 동시에 띄고있었다. 그리고 라인강과 로아르강 사이의 북 프랑스 지방은 브르고뉴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로마네스크가 빈약한 지방이였다. 이 같은 문화적 특수성이외에 서트 랑크왕국에서는 동프랑크앙국에 비해 지방분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각 지방 스스로 독자적인 조영기법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여자를 마련해 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다양한 유과를 영 성할 수 있었다. 활발한 수도원 운동의 중심이었던 브르고뉴 유해하 당시 활발히 이루어졌던 순혜로에 있던 중 • 서부유파 등이 특히 대표적이다. 특히 프랑스 안에 있으며 당시 노르만의 영역이었던 노르망디 지방 은 그 무렵 노르만의 지배하에 있던 잉글랜드와 함께 하나의 유파를 형성했다. 잉글랜드에 있어서 노르망디 유파는 선주민인 색슨족의 조 형기법을 혼합하여 "앵글로-노르만"이라 할 만한 특징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는 것은 이탈리아 및 스페인의 로마 네스크이다. 이탈리아는 중세를 통해 끊임없이 북방세력의 압력을 받 았는데 내부로는 고전 로마와 그리스도교 로마가 상극적인 입장에 있 었으며 베네치아나 시칠리아는 왕성한 해상교역으로 인해 동방에 대 한 동경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이유로 이곳의 로마네스크 양식 은 이미 시작부터 자연히 북방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스페인의 로마네스크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전혀 비유럽적인 사라센의 조형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본토와는 매우 다른 요소를 포함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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